유월절과 이집트를 휩쓴 열개의 재앙
유월절과 열 가지 재앙
유월절은 재앙에서 보호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절기다. BC 15세기경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제정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영도자로 선택해 파라오와 담판을 짓도록 명령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광야에서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이스라엘인들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1) 파라오가 거부하자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 열 가지 재앙이었다.
열 가지 재앙은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전염병), 독종(악성 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 그리고 장자 죽음의 재앙 순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강물이 피로 물든 첫 번째 재앙은 7일 동안 이어졌다. 네 번째 파리 재앙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고 있던 고센 지역에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구별되었다.2) 재앙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유월절은 가장 강력했던 열 번째 재앙이 내리던 날에 지켜졌다. 그날 이집트를 강타한 장자 죽음의 재앙은 하나님이 모세를 영도자로 세울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3)
하나님은 유월절을 반포하기 직전 또다시 죽음의 재앙을 경고했다.4)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월절을 지키도록 조치했다.
유월절 밤, 하나님의 경고대로 파라오의 장자부터 옥에 갇힌 죄수들의 장남, 심지어 짐승의 첫 새끼까지 모든 가정의 장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 전역은 통곡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다.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를 보고 죽음의 천사가 지나쳤던 것이다.5) 장자를 잃은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속히 내보냈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은패물과 가축 들을 내주며 떠나라고 재촉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밤 이집트에서 해방되었다.
유월절과 재앙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와 학자들의 해석
열 가지 재앙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네덜란드의 레이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대 이집트 문서인 ‘Ipuwer(이퓨어, 아이퓨어, 이푸베르) 파피루스’에는 이집트에 발생했던 재앙들에 대한 출애굽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에는 이집트 전역을 휩쓴 역병, 강물이 피처럼 변한 일과 식수난을 겪는 사람들, 곡물이 모두 고사된 일, 가축들의 신음소리, 빛이 없는 땅, 자녀와 아이, 형제의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과 애곡하는 소리, 귀금속이 여자 노예의 목에 걸려 있다는 내용이 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6)7)
‘Ipuwer 파피루스’는 19세기 초반 멤피스에서 발견됐다. 학자들은 이 문서가 중왕국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09년 영국의 언어학자 앨런 헨더슨 가드너(Alan Henderson Gardiner)에 의해 해석되었다. 이 문서가 출애굽기의 기록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한 사람은 유대계 러시아 출신 학자이자 의사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다. 8)
이집트에 내린 재앙은 자연재해였다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자연재해와 결부시켜 설명하기도 한다.9) 강물이 피로 변한 현상은 일종의 침전물이나 적조현상, 박테리아로 인한 독성 때문이며 이것이 일련의 재앙을 몰고 왔다고 주장한다. 강물이 오염되어 물고기가 죽고 개구리 떼가 깨끗한 물을 찾아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물고기 사체는 이와 파리를 들끓게 했고, 이와 파리가 옮긴 탄저균 때문에 가축들에게 악질이 돌고, 사람에게까지 퍼져 피부 손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우박 재앙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이집트의 우기에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추측한다. 우박과 비가 평소보다 많이 내리면 곤충이 대량 번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메뚜기 재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사막메뚜기는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서 거대한 무리를 지어다니며 순식간에 농경지를 초토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홉 번째 재앙이었던 흑암 재앙은 3일 동안 이어졌다. 이집트의 사막지역에서 발생하는 바람 ‘캄신(Khamsin)’으로 추정하고 있다. 캄신은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와 먼지를 동반하는 경우 주변을 어둠으로 뒤덮는 것이 특징이다.
이집트에 내린 아홉 가지 재앙들이 단순한 자연재해였는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재해를 이용한 하나님의 벌이었는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욱 미스터리한 것은 열 번째 장자 죽음의 재앙이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이집트 가정에만 큰 타격을 입힌 죽음의 재앙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의 신들과 파라오를 심판한 것이다
모세오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유월절을 반포하며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릴 것”이라는 조건을 제시한다. 학자들은 그 구절을 근거로, 이 열 가지 재앙들이 파라오―당시 파라오는 신으로 추앙받았다―를 포함한 이집트 신들을 벌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Ra)를 비롯하여 슈(Shu), 게브(Geb), 누트(Nut), 이시스(Isis), 세트(Set) 등 수많은 신들을 숭배했다. 이집트의 신들은 개구리, 소, 사자, 매 등 짐승의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학자들이 열 가지 재앙과 연관 지은 이집트의 신들은 다음과 같다.10) 11) 12)
- 피 재앙 - 나일강의 신 하피(Hapi), 나일강의 수호신 크눔
- 개구리 재앙 - 개구리 형상의 여신 헤케트(Heket)
- 이 재앙 - 대지의 신 게브(Geb), 하늘의 여신 누트(Nut)
- 파리 재앙 - 쇠똥구리 형상의 신 케프리(Kepri, Kheper)
- 악질 재앙 - 암소 형상의 여신 하토르(Hathor), 황소 형상의 신 아피스(Apis)
- 독종 재앙 - 치료의 여신 이시스(Isis), 임호텝(Imhotep), 토트(Thoth)
- 우박 재앙 - 하늘의 여신 누트(Nut), 바람과 공기의 신 슈(Shu)
- 메뚜기 재앙 - 곡물의 신 네페르(Neper, Nepri), 폭풍과 혼돈의 신 세트(Seth)
- 흑암 재앙 - 태양신 라(Ra)
- 장자 재앙 - 파라오
유월절 밤, 이집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장자 죽음의 재앙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 파라오가 유대 아이들을 학살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말한다.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신들과 파라오를 동시에 벌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Ramesses II)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1995년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 발굴팀이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람세스 2세의 가족 무덤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50개의 미라가 발견됐는데, 모두 람세스 2세의 아들이었다. 그중에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첫 왕세자 아문헤르케페셰프(Amun-her-khepeshef)도 있었다. 람세스 2세가 출애굽 당시의 파라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를 열 번째 재앙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13) 14)
유월절과 재앙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
유월절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집트에서 나온 일을 기억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출애굽 직전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가정에 죽음의 재앙이 피해갔던 역사가 말해주듯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이 약속되어 있다.
BC 8세기경 이스라엘 분열왕국 시대,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는 등극한 직후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성전을 수리하고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킬 것을 선포하는 한편, 북왕국 이스라엘에도 사신을 보내 유월절을 지키자고 권고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조롱하고 비웃을 뿐이었다.15) 유월절을 지킨 유다 그리고 유월절을 무시한 이스라엘의 판도는 크게 달라진다.
두 왕국은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패권을 쥐고 있던 앗수르(아시리아)의 침략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살만에셀(샬마네세르 5세)에 의해 함락당하고 말았는데, 성경은 그 이유가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16) 그러나 유월절을 지킨 유다는 달랐다.
유다를 침공한 산헤립(센나케리브)이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후퇴하는 참패를 당한 것이다. 성경은 그날 밤 하나님의 천사가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들을 쳤다고 기록하고 있다.17)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는 유월절 예법을 파격적으로 개편한다. 양을 잡는 방식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으로 간소화된 것이다. 그러나 재앙으로부터의 보호와 구원에 대한 효력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AD 66년경부터 시작된 제1차 유대-로마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당한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도망하라”고 했던 예수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18) 그런 상황에서 네로 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로마군이 철수하는 일이 벌어진다.
예수를 믿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때를 틈타 요단강 건너 펠라로 도피한다.19) AD 70년 로마군이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성전과 성벽은 철저하게 파괴됐고 사망자는 110만 명에 달했다.
성경에는 불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이 남아 있다.20) 단, 최후의 재앙에서 인위적인 방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21) 예수는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는 마지막 날에 살 것이라고 가르친 바 있다.22) 그 의미심장한 말은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날 유월절을 지키는 과정에서 구체화되었다. 예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그것이 자신의 살과 피라고 말했다.23) 예수의 가르침을 종합해보면 최후의 재앙에서 구원받는 방법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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